2014년 6월 28일 토요일

불국사 홍보

불국사(佛國寺)는 신라 경덕왕(景德王, 재위 742∼765)대인 751년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金大城)이 창건하기 시작하여 774년에 죽자, 나라에서 이를 맡아 완공하였다고 『삼국유사』에 기록이 전한다.

불국사와 석굴암(石窟庵)이 창건된 8세기는 신라의 국력과 문화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로, 분황사 약사상(藥師像)이나 봉덕사(奉德寺)종(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과 같은 위대한 예술품들을 창작하였다. 불국사는 이 최고의 시기를 대표하는 건축이라 할 수 있는데, 최고의 건축에 걸맞게 윤회설을 바탕에 둔 김대성의 창건 전설부터 석가탑의 조각가 아사달 부부의 비극적 설화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연들이 얽혀 있다.
불국사 전경
불국사 전경
임진왜란 중인 1593년, 지장전(地藏殿)에 감추어진 무기를 발견한 왜군들이 불을 지르면서 극히 일부 건물을 제외한 2천여 칸의 건물들이 불타버렸다. 이후 1604년부터 한 세기 동안 차츰차츰 중건하여 1700년대에 비로소 가람의 형태를 다시 갖추었다. 근대기에는 1973년에 대대적인 복원 공사가 이루어졌는데, 대웅전(大雄殿), 극락전(極樂殿), 자하문(紫霞門), 안양문(安養門) 등을 중수하고, 범영루(泛影樓), 무설전(無說殿), 비로전(毘盧殿), 관음전(觀音殿) 등을 옛터에 새로이 복원하였다. 회랑과 나머지 문들은 아예 없어진 것들을 재건하였고, 석축과 계단은 대대적인 수리를 하였다.

불국사는 대웅전 일곽, 극락전 일곽, 비로전 일곽, 관음전 일곽 등 크게 4개의 독립된 영역들로 이루어진 종합 가람이다. 기록에는 이외에도 응진전(應眞殿) 일곽과 명부전(冥府殿) 일곽이 있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각 일곽은 각기 다른 신앙 체계를 위한 독립된 불국토(佛國土)를 상징하는데, 교리적 구별을 위해 회랑이나 담장으로 영역을 명확하게 구획하고 있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경주 불국사 (한국 미의 재발견 - 불교건축, 2004.11.30, 솔출판사)

사찰 내 주요 문화재로는 대웅전과 자하문의 담장을 사이에 두고 동서쪽으로 마주 보고 있는 다보탑(국보 제20호)과 석가탑(국보 제21호)이 대표적이다. 다보탑은 높이 10.4m 석탑으로, 정사각형의 기단에 사방에 돌계단을 만들고 그 위에 8각형의 탑신과 4각의 난간 형태로 제작되어 특수한 형태의 한국 석탑을 대표하며, 석재를 정교하게 조각하고 짜맞추어 화려한 예술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현재의 형태는 일제 강점기 때 복원과 보존에 대한 검증 없이 일본인들이 탑을 완전히 해체하여 다시 보수한 형태로, 탑 속에 있던 사리는 사라지고 돌계단 위의 사각 모서리에 놓여있던 네 마리의 돌사자 중 한 마리만 남아 있다. 한편, 다보탑과 대조되는 석가탑은 높이 8.2m의 3층 석탑으로, 전체적인 비례와 균형에 맞추어 장중하면서도 단아한 멋이 나타나며, 일반적인 형태의 한국 석탑을 대표한다. 이 석가탑 안에서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등 70여 점이 발견되었다.

이외의 주요 문화재로는 석조계단인 대웅전 서쪽에 있는 극락전에 오를 수 있는 연화교와 칠보교(국보 제22호)ㆍ자하문을 거쳐 대웅전으로 통하는 청운교와 백운교(국보 제23호), 불상인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26호)ㆍ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 등이 있다.
다보탑
다보탑
석가탑
석가탑
연화교ㆍ칠보교, 청운교ㆍ백운교
연화교ㆍ칠보교, 청운교ㆍ백운교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불국사 [佛國寺, Bulguksa]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무구정광 대다라니경
751년(경덕왕 10) 무렵에 간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목판권자본(木板卷子本). 현재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세계 최초의 목판인쇄물이다. 1966년 경주불국사의 석가탑을 보수하기 위하여 해체했을 때 발견, 함께 발견된 유물들과 함께 국보 제126호로 지정되었다. 이 인쇄물은 너비가 8cm, 길이가 약 52.5cm의 종이 12장을 이어 붙여서 630cm의 길이로 만들고 이를 둥글게 말아놓은 불경책이다. <무구정광 대다라니경>은 도화라국(都貨邏國)의 승려인 미타산(彌陀山)이 법장(法藏)과 함께 704년 경에 한역하여 대장경에 편입한 것이다. 이 불경의 내용은, 옛 탑을 수리하거나 조그마한 탑을 무수히 만들어 그 속에 공양하며 법에 의해 신주(神呪)를 염송하면 수복을 얻고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무구정광 대다라니경 [無垢淨光大陀羅尼經] (한국고중세사사전, 2007.3.30, 가람기획)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높이 166㎝. 국보 제27호. 비로전(毘盧殿)에 봉안된 금동비로자나불상과 같은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는 이 불상은 장대한 인상을 주고 있다.
형태는 한마디로 ‘긴장감이 이완된 장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떡 벌어진 어깨와 당당한 가슴, 늘씬한 몸매에 볼록한 아랫배 등은 건장한 남성적인 체구를 연상시켜 준다. 그러나 긴장감과 활력이 줄어져서 어딘가 맥빠진 느낌을 준다.
얼굴의 근육도 팽창된 편이지만 근육의 이완이 역연하며, 가슴이나 어깨의 근육 역시 둥글고 부푼 모양이지만 긴장성이 해이되어 축 늘어지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선에서도 나타나, 옷주름선은 어깨나 팔을 제외하고는 부드럽고 유연한 편이나, 가령 가슴의 옷깃 안쪽에서 밖으로 늘어지게 한 옷접힘 또는 팔에서 내려오는 지그재그형의 옷자락, 그리고 배와 다리의 옷주름선들이 축 늘어져 있다.
뿐만 아니라 어깨와 팔, 무릎의 옷접힘과 무릎 사이에 내려온 형식적인 손과 팔, 무릎 그리고 평평하게 처리한 콧잔등 등에서 직선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추상화의 경향이 엿보인다.
이 불상은 8세기에 제작된 석굴암 본존불의 특징과는 다른 9세기 불상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는 불상으로서 당시 불상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불국사금동아미타여래좌상 [佛國寺金銅阿彌陀如來坐像]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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